액션 연기: 블로킹 — 동선 설계

연극을 보러 가면 이상한 일이 하나 있다. 배우가 여러 명인데도 누굴 봐야 할지 헷갈리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이 늘 잘 보이는 자리에 서 있다. 우연이 아니다. 누가 언제 어디에 서고, 어디로 걸어갈지 미리 다 정해 둔 것이다. 이걸 블로킹(blocking), 우리말로는 동선 설계라고 한다.
블로킹은 무대 위의 축구 포지션이다
축구에서 열한 명이 공만 쫓아다니면 어떻게 될까. 다 한 곳에 뭉쳐서 아무것도 안 된다. 그래서 골키퍼는 뒤에, 공격수는 앞에 선다. 자리를 나눠 갖는 것이다.
무대도 똑같다. 배우들이 각자 편한 곳에 서면 서로 몸을 가린다. 뒷사람 얼굴이 안 보이고, 중요한 대사가 등 뒤에서 나온다. 그래서 연출가가 미리 자리를 정해 준다. "너는 여기서 시작해서, 이 대사에서 창문 쪽으로 세 걸음 걸어가."
사진 속 배우들이 아무렇게나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게 바로 잘 짜인 블로킹이다. 자연스러워 보이는 게 목표니까.
무대에는 아홉 개의 방 이름이 있다
"저기 좀 더 가서 서 봐"라고 말하면 아무도 못 알아듣는다. 그래서 무대를 아홉 칸으로 나누고 칸마다 이름을 붙였다. 바둑판처럼 말이다.
관객과 가까운 앞쪽을 다운스테이지, 멀리 있는 뒤쪽을 업스테이지라고 부른다. 옛날 무대는 뒤쪽이 언덕처럼 살짝 높았다. 그래서 뒤로 가면 "올라간다(업)", 앞으로 오면 "내려온다(다운)"가 된 것이다.
왜 왼쪽이 오른쪽이 될까
친구와 마주 보고 서서 "오른손 들어"라고 해 보자. 친구의 오른손은 내 눈에는 왼쪽에 있다. 무대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무대 방향의 왼쪽·오른쪽은 관객이 아니라 배우 기준이다. 배우가 관객을 바라보고 섰을 때의 왼손 쪽이 무대 왼쪽이다. 그래서 객석에서 보면 무대 왼쪽은 오른편에 있다. 헷갈리기 딱 좋아서, 객석 기준으로 말할 때는 "하우스 레프트"처럼 따로 이름을 붙여 구분한다.

이걸 헷갈리면 연습 첫날부터 사고가 난다. 연출가는 "무대 오른쪽으로"라고 했는데 배우 둘이 서로 반대로 걸어가서 한가운데서 부딪히는 것이다.
옛날에는 사진 찍듯 세웠다
블로킹의 규칙은 옛날부터 지금 같지는 않았다. 19세기 이전 서양 연극에서는 타블로라는 방식을 썼다. 타블로는 '한 폭의 그림'이라는 뜻이다.
누가 등장하거나 퇴장할 때마다 배우들이 멈춰 서서 그림 같은 한 장면을 만들었다. 학예회 때 단체 사진 찍는 것과 비슷하다. 이때 주인공은 항상 제일 잘 보이는 한가운데, 제일 앞자리를 차지했다. 이야기가 그럴듯한지보다 주연 배우가 멋져 보이는지가 먼저였다.

극장 평면도를 보면 왜 그랬는지 짐작이 간다. 무대는 한쪽 방향만 열려 있고, 좋은 자리에 앉은 귀족들이 정면에서 바라본다. 무대를 정면 액자처럼 쓰던 시절이라 자리싸움이 곧 인기싸움이었다.
진짜처럼 보이려다 복잡해졌다
19세기에 사실주의가 들어오면서 판이 바뀌었다. "우리 집에서는 아무도 저렇게 안 서 있는데?"라는 생각이 퍼진 것이다.
진짜 사람은 대화하다가 등을 돌리고, 소파에 앉고, 물을 마시러 가고, 문가에 기대선다. 그래서 배우도 그렇게 움직여야 했다. 문제는 그러면 얼굴이 안 보이고 목소리가 묻힌다는 것이다. 지금 연출가가 푸는 숙제는 늘 이 둘 사이에 있다. 진짜 같아 보이면서도 관객에게 다 보이게.
요즘은 더 어려워졌다. 객석이 무대를 삼면이나 사면으로 둘러싸는 극장이 흔해졌다. 어느 방향에서 봐도 등만 보이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영화나 드라마라면 관객 자리에 카메라가 앉는다. 카메라는 자리를 옮겨 다니니, 배우는 렌즈가 어디 있는지까지 계산해서 서야 한다.
좋은 동선의 세 가지 원칙
복잡해 보여도 초보가 붙잡을 원칙은 몇 개 안 된다.
첫째, 남을 가리지 않는다. 나보다 앞에 선 사람이 있으면 반 발짝 옆으로 비켜선다. 무대에서는 이걸 '몸을 열어 준다'고 말한다.
둘째, 일렬로 서지 않는다. 세 명이 한 줄로 겹치면 두 명이 사라진다. 삼각형으로 흩어지면 셋 다 산다.
셋째, 이유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초보 배우는 긴장하면 제자리에서 왔다 갔다 한다. 관객 눈에는 그게 다 신호로 읽힌다. 움직였는데 이유가 없으면 관객은 "왜 저러지?" 하다가 대사를 놓친다. 반대로 화가 나서 한 걸음 다가서면, 말보다 그 한 걸음이 먼저 감정을 전한다.
알면 좋아지는 점, 모르면 겪는 문제
알면 좋아지는 점. 대사를 외우는 부담이 확 준다. "창가에 가서 이 말을 한다"처럼 몸의 순서와 말이 묶이면, 몸이 먼저 기억한다. 함께 연기하는 사람과 부딪히는 일도 사라진다. 무엇보다 감정을 얼굴로만 짜내지 않아도 된다. 한 걸음 물러서는 것만으로 "나 지금 무섭다"가 전해진다.
모르면 겪는 문제. 무대에 서면 발이 굳는다. 어디 서야 할지 모르니 한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게 되고, 그래서 더 어색해진다. 상대와 나란히 붙어 서서 둘 다 반쪽만 보이기도 한다. 조명이 비추는 자리를 벗어나 얼굴이 어둠에 잠기는 사고도 흔하다. 연습 때 정해 둔 자리가 없으면 매 공연마다 결과가 달라진다. 어제는 됐는데 오늘은 안 되는 것이다.
직접 해 보기
거창한 무대가 없어도 연습할 수 있다. 방바닥에 테이프로 네모를 그리고 한쪽을 관객이라 정한다. 친구 둘과 짧은 대화를 정한 뒤, 삼각형으로 서서 한 번, 일렬로 서서 한 번 해 본다. 휴대폰으로 관객 자리에서 찍어 비교해 보면 차이가 바로 눈에 들어온다.
그다음엔 대사마다 움직일 이유를 하나씩 붙여 본다. "이 말이 부끄러워서 등을 돌린다", "이 말을 강조하려고 한 발 다가선다". 이유가 붙은 움직임만 남기고 나머지는 지운다. 그게 블로킹의 시작이다.
출처
리깅 파이프라인 자동화 도구
반복 작업은 스크립트에게. 현업에서 쓰는 리깅 툴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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